관련 사례
대가를 지급하고 쓴 창작물도 권리 관계가 불명확하면 분쟁이 됩니다.
이 글은 실제 판례(서울북부지방법원 2021가합25193)를 바탕으로 각색한 사례 콘텐츠입니다. 등장인물·대화·상황은 이해를 돕기 위해 재구성되었으며, 특정 인물이나 실제 사건과 무관합니다.
원작을 받아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다면, 누구나 한 번쯤 이렇게 생각한다.
"이 정도 바꿨으면, 이제 내 작품 아닌가?"
장면을 새로 넣고, 인물을 다시 빚고, 구조를 통째로 갈아엎었다면 그 생각은 절반쯤 맞다. 실제로 법은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을 독자적인 2차적저작물로 인정해 주기도 한다.
문제는 나머지 절반이다. 그리고 많은 2차 창작자들이 바로 그 나머지 절반에서 발목을 잡힌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원작자가 아니라, 각색한 쪽이다.
연출가 B는 한 편의 연극을 기획했다. 이야기의 큰 틀을 직접 구상한 뒤, 핵심이 되는 한 부분의 대본을 극작가 A에게 부탁했다.
A가 대본을 써서 넘겨주자, B는 본격적으로 자기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장면을 새로 넣고, 시간 구조를 과거와 현재로 교차시키고, 등장인물의 사연을 다시 짰다. 음악과 노래를 더해 분위기를 바꿨고, 액자식 구성으로 이야기를 새로 엮었다.
A가 건넨 대본과 무대에 오른 작품은, B가 보기엔 이미 상당히 달랐다.
초연 때만 해도 포스터에는 '작 A, 연출 B'라고 두 사람 이름이 함께 올랐다. 그런데 이듬해 같은 작품을 다시 올리면서, B는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원작은 거의 안 남아있는데.. 원작자 이름을 넣어야 할까?.'
재공연 포스터의 크레딧은 '작·연출 B' 로 바뀌었다. A의 이름은 빠졌다. B는 그 대본으로 어문·연극·영상 저작권을 자기 이름으로 등록까지 마쳤다.
악의가 있었다기보다, 정말로 자기 작품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A가 항의했지만 B는 물러서지 않았다.
"원작을 거의 다 바꿨는데요."
결국 다툼은 소송으로 번졌다. 그리고 B는 자신 있었다.
"이건 완전히 다른 작품인데, 설마 지겠어?"
놀랍게도 B의 직감은 대부분 맞았다.
법원은 B의 대본이 단순한 베끼기가 아니라 새로운 사건과 배경을 더하고 구조를 바꿔 새 창작성이 부가된 2차적저작물(저작권법 제5조)이라고 인정했다. 그 결과 B에게 유리한 판단이 줄줄이 이어졌다.
복제권·공연권 침해 → 부정
단순 복제가 아니라 독자적인 새 창작물이므로
2차적저작물작성권 침해 → 부정
원작자 A가 각색·공연을 허락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동일성유지권 침해 → 부정
A가 내용 변경에 동의한 범위 안의 수정이므로
공표권 침해 → 부정
원작자가 청구한 재산상 손해배상(공연 매출의 20%)도 전부 기각됐다. B 명의로 해 둔 저작권 등록을 말소하라는 청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지어 소송비용도 80%를 원고(A)가 부담하게 됐다. 숫자만 보면 B의 압승이었다.
"거의 다 바꿨으니 내 작품"이라는 B의 믿음은, 이 큰 쟁점들에 관한 한 법적으로 옳았던 것이다.
전부 이긴 줄 알았던 B가 끝내 책임을 진 부분이 하나 있었다. 성명표시권이었다.
저작권법은 2차적저작물을 만들 권리와 원작자의 이름을 표시할 권리를 완전히 별개의 권리로 본다.
저작권법 제12조 제2항은, 저작물을 이용하는 사람은 저작자가 특별히 다른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저작자가 표시해 온 대로 그 성명을 표시해야 한다고 정한다.
그리고 법원은 이 '저작물의 이용'에 2차적저작물의 작성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보았다.
2차적저작물작성권과 성명표시권은 저작권법이 인정하는 별개의 권리인 점, 저작권 법 제12조 제2항 본문은 “저작물을 이용하는 자는 그 저작자의 특별한 의사표시가 없 는 때에는 저작자가 그의 실명 또는 이명을 표시한 바에 따라 이를 표시하여야 한다.” 고 규정하고 있는데, 위 ‘저작물의 이용’에는 2차적저작물의 작성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2차적저작물의 작성자는 원저작물의 저작자를 2차적저작물에 표시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 서울북부지법 2021가합25193 판결문 중 발췌
법원은 B가 원작자 A를 표시하지 않은 점을 들어 성명표시권 침해를 인정했고,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원작자 A를 표시하지 않는 한, 해당 대본으로 공연하는 것을 금지 (저작권법 제123조)
정신적 손해배상(위자료) 300만 원 지급
B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큰 쟁점은 거의 다 이겼다. 그런데 자기 작품이라 믿었던 그 무대를, 원작자 이름을 넣지 않으면 더 이상 올릴 수 없게 됐다.
1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작품이 멈춰 선 것이다. 그가 사소하다고 여겨 지운 한 줄, 바로 그 한 줄 때문에.
이 사건의 진짜 교훈은 역설적이다.
원작을 많이 바꿀수록 "이건 내 작품"이라는 확신은 커진다. 그리고 그 순간, 원작자의 이름은 가장 잊기 쉽다.
많이 바꿨다는 사실은 2차적저작물 인정에는 유리하게 작용하지만, 성명표시 의무를 면제해 주지는 않는다.
B처럼 각색·편집·리메이크·번안을 하는 입장이라면, 아래 4가지를 점검해 두는 게 안전하다.
원작자 표시를 빼지 않는다.
통상 '원작 ○○○' 또는 '원저작자 ○○○'를 함께 표기한다. 많이 바꿨다는 이유는 표시 의무의 면제 사유가 아니다.
크레딧 표기 방식을 작업 전에 글로 합의한다.
원작자를 어떻게, 어디에 표시할지를 계약서나 메시지로 명확히 남긴다.
이용허락 ≠ 이름 삭제 허락.
각색·공연·게시를 허락받았다고 해서 성명표시 생략까지 허락받은 것은 아니다. 생략하려면 그 점을 따로 명시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내 이름으로 등록했다고 안심하지 않는다.
2차적저작물은 등록할 수 있고 원작자가 그 등록을 말소시키지도 못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성명표시권 침해 책임은 질 수 있다.
원작자 이름 한 줄을 넣는 데 드는 비용은 0원이다. 그것을 뺐을 때 치를 수 있는 비용은, 작품 전체의 공연·게시 중단이다.
자문·감수 : 이환권 변호사
법무법인 이현 대표 변호사 · 지적재산권 분쟁 담당
새 창작성이 더해지면 '2차적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고, 실제로 위 사건의 각색물도 독자적인 2차적저작물로 인정됐습니다.
다만 이는 원작과 별개의 새 저작물이 추가로 인정된다는 뜻이지, 원작자의 권리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특히 성명표시권은 그대로 남습니다.
아닙니다. 이용허락(재산권)과 성명표시권(인격권)은 별개입니다(저작권법 제12조 제2항).
각색·공연을 허락받았더라도, 원작자가 "이름을 빼도 좋다"고 따로 동의하지 않았다면 표시해야 합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위 사건에서도 원작자가 변경에 동의했기에 '동일성유지권' 침해는 부정됐지만, 이름을 빼고 공연한 '성명표시권' 침해는 별도로 인정됐습니다. 변경 동의와 이름 삭제 동의는 다릅니다.
2차적저작물의 저작자는 자기 이름으로 등록할 수 있고, 원작자가 그 등록을 말소시킬 수도 없습니다(위 사건에서 말소 청구는 기각). 그러나 등록을 했다는 사실이 원작자의 성명표시권 침해를 면제해 주지는 않습니다. 등록과 성명표시 의무는 별개입니다.
💡
원작자 표시 없이 이용하는 것에 대한 침해 중지(공연·게시 금지) 와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당할 수 있습니다(저작권법 제123조).
위 사건처럼 작품 전체의 공연이 막힐 수 있으므로, 표시 방식은 사전에 정리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구체적인 사안은 전문가와 검토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실제 판례(서울북부지방법원 2021가합25193)를 바탕으로 각색한 사례 콘텐츠입니다. 등장인물·대화·상황은 이해를 돕기 위해 재구성되었으며, 특정 인물이나 실제 사건과 무관합니다. 본문 중 사용된 이미지는 판결문을 제외하고는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