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이 위험한 이유
술자리에서의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실수가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순간, 법의 잣대는 매우 엄격해집니다. 특히 상대방이 술에 취해 항거불능 상태였다면, 이는 단순 추행이 아닌 준강제추행이라는 무거운 죄명으로 다가옵니다.
많은 분이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며 가장 먼저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변호사님, 필름이 끊겨서 기억이 하나도 안 납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만취로 인한 블랙아웃'은 더 이상 면죄부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CCTV나 목격자 진술 등 객관적 증거가 범행을 가리키고 있을 때 기억이 안 난다고 버티는 것은 반성하지 않는 태도로 비칠 위험이 큽니다.
이때 가장 강력한 구명줄은 단연 합의입니다. 피해자의 처벌불원서는 기소유예나 감형을 이끌어내는 핵심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피해자가 완강히 합의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걸까요? 오늘은 합의가 결렬된 최악의 상황에서도, 치밀한 전략으로 실형 위기를 넘기고 벌금형으로 방어해낸 대학생 A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실제 사례] 명문대생 A씨, 준강제추행 합의 실패라는 벼랑 끝에서
2024년 여름, 갓 성인이 된 대학교 1학년 A씨는 동창인 여사친과 술을 마셨습니다. 분위기에 취해 두 사람 모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만취한 상태였죠. 문제는 A씨가 술집 내부와 밖 계단에서 친구의 신체를 만지면서 발생했습니다.
지나가던 행인의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된 A씨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명문 공대에 재학 중이던 A씨에게 성범죄자라는 낙인은 곧 모든 미래의 상실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저희를 찾아왔을 때 A씨는 "술집 밖에서 잠깐 부축하다 닿은 것 같다"라며 소극적으로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확보한 CCTV에는 술집 내부에서부터 신체 접촉이 있었던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명백한 증거 앞에서 거짓 해명은 오히려 가중처벌의 빌미가 될 뿐이었습니다.
저희는 즉시 전략을 수정하여 혐의를 인정하고 자백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검찰 단계에서 찾아왔습니다.
A씨는 형사조정을 통해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 측은 조정 당일 마음을 바꿔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며 조정을 거부했습니다. 피해자의 부친 또한 강력한 처벌을 원하고 있어 준강제추행 합의는 완전히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합의 결렬은 곧 엄벌로 이어지는 직행열차와도 같았기에, A씨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합의가 불발되었을 때 변호인이 선택한 전략
합의에 실패했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희 법무법인 이현의 형사 전담팀은 A씨를 위해 합의서를 대체할 수 있는 모든 양형 자료를 긁어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피해자의 용서를 받지 못했다면, 재판부가 피고인의 '진지한 반성'과 '재범 가능성 없음'을 확신하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수립한 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철저한 자백과 수사 협조: 초기 기억이 안 난다고 했던 진술을 바로잡고, CCTV 내용을 인정하며 수사에 적극 협조했습니다. 이는 "증거가 있는데도 오리발을 내민다"는 나쁜 인상을 지우고, 반성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성실한 사회 구성원임을 입증: A씨가 학창 시절 내내 모범상과 봉사상을 받으며 올바르게 살아온 학생임을 강조했습니다. 생활기록부와 주변인의 탄원서를 통해 이번 사건은 이례적인 실수라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구체적인 재범 방지 노력: 술이 문제였음을 인정하고, 알코올 관련 교육을 이수하며 음주 습관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단순한 반성문 제출을 넘어선 실천적인 노력이었습니다.
지속적인 사과 시도와 공탁 고려: 비록 합의는 거절당했지만, 변호인을 통해 피해 회복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는 점을 수사기관과 법원에 피력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A씨는 벌금 5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습니다. 합의가 결렬된 성범죄 사건에서, 초범이라 할지라도 정식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형의 집행유예나 더 무거운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은 현실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다행스러운 결과였습니다. A씨는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피해자가 감당하기 힘든 합의금을 요구하면 어떻게 하나요?
A. 무리한 요구에 반드시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합의가 결렬되더라도 형사공탁 제도를 활용하여 법원에 적정 금액을 맡기고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음을 법적으로 인정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Q. 합의를 못 하면 무조건 감옥(실형)에 가나요?
A.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위 A씨의 사례처럼 합의가 되지 않아도 초범 여부, 반성의 정도, 연령, 범행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있습니다. 단, 합의가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치밀한 변론이 필요합니다.
Q. CCTV가 있어도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 무죄가 될까요?
A. 어렵습니다. 블랙아웃은 심신상실의 증거가 되기도 하지만, CCTV 속 행동이 자연스럽거나(걸음걸이 등) 목적성이 보인다면 인정받기 힘듭니다. 명백한 증거 앞에서의 억지 주장은 오히려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많은 의뢰인이 "합의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포자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A씨의 사례에서 보듯, 합의만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닙니다.
법원은 피고인이 얼마나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는지, 이 사회에서 건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이 범행이 얼마나 우발적인 실수였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만약 A씨가 합의 실패에 좌절하여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혹은 끝까지 거짓말이나 변명으로 일관했다면 결과는 500만 원 벌금형으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내 편이 되어줄 법률 전문가와 함께, 현재 상황에서 꺼낼 수 있는 최선의 카드를 찾아내고 설득하는 과정입니다.
길은 반드시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