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사례는 저희 이현에서 직접 수임하여 처리한 사건으로, 의뢰인 특정 방지를 위해 일부 각색되었습니다. 장물을 모르고 구매한 의뢰인을 A, 장물 판매자를 B라고 칭하겠습니다
취미에 진심이면 생기는 일
A는 목공이 취미다. 심지어 잘 한다. 혼자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건 수준급이고, 자동차도 A에겐 뜯어보는 재미가 있는 장난감 중 하나다.
‘목공은 장비 빨’
A는 그 말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평소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물건을 많이 찾아봤고, 그 품목은 99% 공구들이었다.
어느 날,
A는 여느 때처럼 당근을 둘러보다가 꽤 괜찮은 가격에 올라온 물건을 발견했다. B의 판매글이었다. B의 판매 물품 목록에는 A가 중고로 구하기 어려웠던 공구들이 잔뜩 있었다. A는 다년간의 중고 거래를 통해 다져진 사기꾼을 거르는 레이더를 발동시켰다.
우선 거래 조건.
B의 판매 글은 평범했다. 급처도 아니었고, 현금 결제만 유도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직거래를 희망하며 계좌이체를 받겠단다. 당근마켓 매너온도도 나쁘지 않았다.
물건은 하자가 없을까.
시세에 비해 좀 저렴한 편이기는 했지만, 사진상으로 보기에도 사용감이 많아서 크게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A가 직거래를 위해 이동해야 하는 거리를 생각해 보면 여러 개를 묶어서 사야 이득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물건에 업체 이름 같은 게 써있긴 했지만, 중고 공구들에는 마킹이 되어 있는 경우가 흔해서 딱히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직거래니까, 만나서 작동해 보면 된다는 계산이 섰다.
자, 이제 마지막 확인이다.
“사장님, 매물이 어떻게 이렇게 많아요?”
“건설 관련 회사를 운영 중인데, 공구들 교체 시즌이라 그래요.”
‘유레카! 찾았다 내 사랑’
A는 안정적인 구매처를 찾았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종류도 많고, 가격도 합리적인 게 여태까지 공구가 없어 미뤄뒀던 작업들을 잔뜩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즐거워졌다. 주중에는 일하면서 뭘 만들지, 뭘 살지 고민하다가 주말에는 B를 만나 거래를 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경찰에게서 연락을 받기 전까지.
“00경찰서 000팀에 근무하는 000수사관입니다. 귀하께서 거래하신 공구들은 건설 현장에서 절도 접수된 것들로, 사건 관련하여 장물을 취득하신 걸로 보이니 조사받으러 오셔야 합니다.”
장물취득죄를 피하려면
수사 방향은 이미 A에게 혐의가 있다고 보고 있었다. B가 물건을 훔쳐다 판 사람들 중 거래량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하긴 2달 동안 80여 개가 넘는, 총 600만 원어치의 중고 공구를 구매했는데 수사관의 입장에서 그저 공구에 미친 사람으로 보는 게 더 쉬울까, 장물을 취득해 이득을 내려는 사람으로 보는 게 더 쉬울까.
장물취득죄는 ▲장물이라는 걸 알고도 취득했을 때 ▲장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가지고도 구매했을 때 ▲장물임을 알고도 계속 보관할 때 성립한다. 즉, 장물취득죄를 피하기 위해서는 △장물이라는 것을 몰랐고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못했으며 △구매 이후에도 장물임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의뢰인 A가 얼마나 목공 취미 생활에 진심인 사람인지, 공구들을 왜 장물이라고 의심하지 못했는지, 만약 A가 범죄에 연루된 물건임을 알았다면 구매하지 않았을 사람인 것에 대해 수십 장에 걸쳐 주장했다.
현재 A는 무사히 불기소 결정을 받았고, 앞으로 중고 거래는 다시는 하지 않겠다 말했다. 다만 여전히 뚝딱뚝딱 만들고 고치는 걸 너무 좋아하고 즐기는 터라, 거래 상대를 더 신중히 고르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
중고 거래에 있어 사기꾼만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절도범 여부까지 파악해야 한다니, 너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장물을 모르고 구매했다가 범죄에 연루되어 조사받으러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