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하시다 보면 급하다는 이유로, 혹은 상대방을 믿는다는 이유로 "일단 진행하시죠, 계약서는 나중에 씁시다" 하고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특히 현장에서 잔뼈가 굵으신 사장님들일수록 "서로 믿고 하는 거지, 무슨 종이 쪼가리냐"며 구두 합의를 선호하시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나중에 문제가 터지고 저를 찾아오셔서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바로 이겁니다.
"변호사님, 말로 한 것도 계약이라던데... 저 돈 받을 수 있는 거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오늘은 구두 계약 때문에 밤잠 설치시는 사장님들을 위해, 법정에서 통하는 진짜 현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 구두 합의도 법적 효력은 있다… 그런데 왜 문제가 생길까?
민법상 계약은 '청약'과 '승낙'이라는 의사표시만 합치되면 성립합니다. 꼭 종이에 도장을 찍지 않아도, "이 가격에 해주세요" 하고 "네, 알겠습니다" 하면 법적으로 계약은 성립된 것입니다.
문제는 '효력'이 아니라 '증명'입니다.
재판장에 가면 판사님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눈에 보이는 증거'만 믿습니다. 구두 계약은 공기 중에 흩어지는 말이라서, 상대방이 "어?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라고 오리발을 내밀면 증명할 길이 막막해지는 것이죠.
2. 사장님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 3가지
제가 상담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사장님들이 흔히 하시는 착각 3가지를 꼽아봤습니다.
착각 ①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아뇨, 법원에서는 증거 없는 진실은 '주장'일 뿐입니다. 상대방이 거짓말을 해도, 내가 그걸 반박할 물증이 없다면 판사님은 상대방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냉혹한 '입증 책임'의 원칙입니다.
착각 ② "통화 내역이 있으니까 괜찮다?" "몇 시에 통화했는지 기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통화 내역은 두 사람이 연락했다는 사실만 증명할 뿐, '무슨 내용을 합의했는지'는 보여주지 못합니다. 녹음 파일이 없다면 통화 내역만으로는 계약 내용을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다른 증거(문자, 이메일, 녹음 등)와 함께 활용해야 합니다.
착각 ③ "일단 해주고 나중에 청구하면 주겠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릅니다. 일이 완료된 후에는 상대방은 아쉬울 게 없습니다. 이때부터는 대금을 깎으려 하거나, 트집을 잡기 시작합니다. 계약서는 사이가 좋을 때 써야 합니다.
3. 구두 합의로 계약했을 때 실제로 발생하는 손해
구두로만 합의했을 때 사장님들이 겪는 대표적인 피해 유형입니다.
대금 후려치기: "내가 언제 1,000만 원이라고 했어? 800만 원에 하기로 했잖아."라며 뻔뻔하게 나옵니다.
무한 수정 요청 (과업 범위 초과): 구체적인 업무 범위를 안 적었으니, "이것도 해달라, 저것도 해달라"며 공짜 추가 노동을 강요받습니다.
책임 전가: 납기가 늦어지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모든 책임을 계약서가 없는(약자인) 사장님에게 떠넘깁니다.
계약 해지 문제: 서면이 없으면 ‘해지 요건’이 없기 때문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판단이 매우 어렵습니다.
4. 지금 당장 해야 할 구두 계약 방어 전략
이미 구두로 합의하고 일을 시작하셨나요?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증거 만들기' 작전에 돌입해야 합니다.
통화 후 '확인 문자' 보내기: 전화 끊자마자 내용을 요약해서 문자나 카톡을 보내세요.
"대표님, 아까 통화한 대로 A공사 11월 30일까지 500만 원(부가세 별도)에 진행하겠습니다. 계좌번호는 ~입니다."
답장 유도하기: 상대방이 "네", "알겠습니다", "ㅇㅇ"이라도 답장을 하게 만드세요. 이 짧은 대답이 법적으로 아주 강력한 '승낙의 증거'가 됩니다.
가능하면 음성 녹음까지 해두기: 통화·회의 녹음은 원칙적으로 본인이 참여한 통화라면 법적으로 문제 없습니다.
5. 사장님이 당장 실무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구두 계약 방지 체크리스트’
거창한 계약서가 부담스럽다면, 문자나 이메일로 아래 4가지만이라도 명확히 남기세요. 이것만 있어도 소송에서 이길 확률이 80% 이상 올라갑니다.
✅ 최종 금액 및 지급 시기 (부가세 포함 여부, 선금/잔금 날짜)
✅ 정확한 납기일 (언제까지 완료할 것인가)
✅ 업무의 범위 (어디까지 해주는 것인가, 수정 횟수 제한 등)
✅ 위약금/해지 조건 (중도 포기 시 어떻게 할 것인가)
6. 분쟁이 이미 발생했다면? 구두 합의라도 입증하는 방법
"변호사님, 이미 상대방이 딴소리를 시작했습니다. 어떡하죠?" 너무 걱정 마세요.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흩어진 퍼즐 조각을 모아야 합니다.
간접 증거 수집: 과거에 주고받은 문자, 이메일, 카톡 대화 내용을 샅샅이 뒤지세요. 단가표를 보낸 기록, 중간보고에 대해 상대방이 "좋네요"라고 한 기록 등을 찾으세요.
내용증명 발송: 상대방을 압박하고 나의 주장을 공식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구두 합의하지 않았느냐"는 내용을 담아 보내세요.
증인 확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직원이나 제3자의 진술서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7. 자주 물어보는 질문 (FAQ)
실제 사장님들이 상담 오셔서 가장 많이 물어보시는 질문 3가지를 뽑아 답변드립니다.
Q1. 상대방 동의 없이 통화를 녹음했는데, 이거 불법 아닌가요?
아니요, 불법이 아닙니다. 통신비밀보호법상 '대화 당사자' 간의 녹음은 합법입니다. 사장님이 상대방과 직접 대화하면서 녹음한 것은 재판에서 아주 강력한 증거로 쓸 수 있습니다. (단, 제3자가 남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건 불법입니다.)
Q2. 카카오톡 대화 내용도 법적 효력이 있나요?
네, 있습니다. 카톡이나 문자로 주고받은 내용도 계약의 내용을 입증하는 '처분문서'에 준하는 증거 능력을 가집니다. 그러니 대화방 나가지 마시고, 꼭 '내보내기' 기능으로 백업해 두세요.
Q3. 계약서는 없지만 일은 다 해줬는데 돈을 안 줍니다. 방법이 없나요?
계약서가 없더라도 '부당이득 반환 청구' 등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사장님이 일을 수행했다는 결과물, 상대방이 그것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입증하여 노동의 대가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약정된 금액을 다 받을 수 있을지는 다툼의 여지가 있으므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장님,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은 사업에서 가장 위험한 말입니다.
상대방을 못 믿어서 계약서를 쓰는 게 아닙니다.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고 서로 얼굴 붉히지 말자고 쓰는 것이 계약서입니다. 오늘 알려드린 내용 꼭 기억하시고, 구두 계약의 늪에서 벗어나 정당한 사장님의 땀의 대가를 지키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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