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연락을 안 받아요. 전화도 안 되고, 문자도 답이 없습니다."
형사사건에서 가장 답답한 상황입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고, 피해를 보상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습니다.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하거나, 성범죄처럼 피해자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라면 더욱 막막합니다.
이런 상황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있습니다. 바로 형사공탁입니다. 2022년 12월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피해자에게 직접 줄 수 없다면, 법원에 맡겨두세요"라는 개념입니다. 오늘은 형사공탁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실제로 형량을 줄이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형사공탁 제대로 알아보기|합의 거부·피해자 정보 비공개
형사공탁금이란 법원에 맡기는 보상금
1️⃣ 은행 대신 법원에 맡긴다
형사공탁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친구에게 빌린 돈을 갚으려는데, 친구가 전화를 안 받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할까요? 공동 지인에게 돈을 맡기고 "이거 전해줘"라고 부탁할 수 있겠죠.
형사공탁도 비슷합니다.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주고 싶은데 줄 방법이 없을 때, 법원에 돈을 맡겨두는 것입니다. 공탁법 제5조의2에서 정한 제도로, 법적 용어로는 "법령 등에 따라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에 그 피해자를 위하여 하는 변제공탁"이라고 합니다.
2️⃣ 일반 공탁과 뭐가 다른가요?
여기서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보통 공탁은 돈을 맡기면 빚이 사라집니다. 마치 은행에 대출금을 갚으면 빚이 없어지는 것처럼요.
그런데 형사공탁은 다릅니다. 창원지방법원 판결(2022노1779)이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형사공탁을 했더라도 피해자가 돈을 안 찾아가면 빚은 그대로 남아있다. 다만, 피해자가 찾아가면 나중에 민사소송에서 그만큼 차감된다."
왜 이렇게 다를까요? 형사공탁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반 공탁은 "빚을 갚았다"는 효과를 위한 것이고, 형사공탁은 "나는 피해를 보상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 형사공탁을 할 수 있나요?
✅ 세 가지 상황
형사공탁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공탁규칙 제81조에 따르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첫째, 법으로 피해자 정보가 보호되는 경우입니다. 성폭력범죄가 대표적입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4조는 피해자의 이름, 주소 등을 공개하지 못하게 합니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누구인지 모르니까, 직접 보상할 방법이 없습니다.
둘째, 재판 기록을 볼 수 없는 경우입니다. 형사소송법 제35조에 따라, 피해자 사생활 보호를 위해 재판 기록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셋째,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하는 경우입니다. 실제로 가장 흔한 상황입니다. 피해자 연락처를 알고 있어도, 피해자가 "연락하지 마세요"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계속 연락하면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됩니다. 법원에서 "피해자를 압박했다"고 볼 수 있거든요. 이럴 때 형사공탁을 활용합니다.
형사공탁 절차,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1단계: 어디에 공탁하나요?
재판이 진행 중인 법원의 공탁소에 합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받고 있다면, 서울중앙지방법원 공탁소에 가면 됩니다. 대부분의 법원 건물 안에 공탁소가 있습니다.
2단계: 공탁서 어떻게 쓰나요?
일반적인 공탁은 "누구에게 주는 돈"인지 분명히 써야 합니다. 이름, 주소, 주민등록번호까지요. 그런데 형사공탁에서는 피해자 정보를 모르잖아요?
공탁법 제5조의2 제2항이 이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피해자 정보 대신 이렇게 쓰면 됩니다.
재판 중인 법원 이름 (예: 서울중앙지방법원)
사건번호 (예: 2024고단1234)
사건명 (예: 사기)
공소장에 적힌 피해자 표시 (예: 피해자 김○○)
공탁 이유도 간단하게 씁니다. "2024년 3월 15일 발생한 사기 사건의 손해배상금"처럼요.
3단계: 돈을 납입합니다
공탁서를 내면 공탁관이 계좌번호를 알려줍니다. 거기에 공탁금을 입금하면 됩니다.
4단계: 법원과 검찰에 자동 통지됩니다
돈이 입금되면, 공탁관이 해당 사건을 맡은 법원과 검찰에 알려줍니다(공탁규칙 제85조). 전자공탁홈페이지에도 공고됩니다. 피해자에게 변호사가 있다면, 그 변호사에게도 연락이 갑니다.
5단계: 반드시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세요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공탁을 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재판부가 알아서 확인해주지 않습니다. 공탁서 사본을 직접 법원에 증거로 제출해야 합니다. 이걸 안 하면 공탁한 의미가 없어집니다.
형사공탁의 현실: 형량이 얼마나 줄어들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합의보다는 효과가 적습니다
여기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형사공탁이 양형(형량 결정)에서 고려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피해자와 합의한 것만큼의 효과는 없습니다.
수원고등법원 판결(2022노912)을 보겠습니다. 피고인이 1,500만 원을 형사공탁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는 "합의할 생각 없다"고 명확히 밝혔고, 공탁금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법원의 판단은요? "형사공탁을 형량을 바꿀 만한 사정 변경으로 보기 어렵다."
피해자가 "처벌해주세요"라고 탄원하면서 공탁금 수령을 거부하는 상황에서는, 공탁만으로 집행유예를 받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렇다고 무의미한 건 아닙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2020노3031)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고인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조차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러한 사정을 유리한 양형 요소로 추가한다."
법원도 인정합니다. 합의가 안 되는 상황에서 형사공탁은 피고인이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아무것도 안 한 것과는 분명히 다르게 봅니다.
광주고등법원 판결(2023노120)에서는 피고인이 4,000만 원을 형사공탁한 점 등을 고려해서 "원심의 형이 무겁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형량이 줄어든 사례입니다.
'상당 금액 공탁'으로 인정받으려면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한 기준에 '상당 금액 공탁'이라는 감경요소가 있습니다. 이게 인정되면 형량에 유리합니다. 어떻게 해야 인정받을까요?
부산고등법원 판결(2022노302)이 기준을 제시합니다.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진짜로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어야 합니다. 원심에서 "나는 안 했다"고 부인하다가 항소심에서 갑자기 자백하고 공탁만 한 경우는 인정이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반성하고, 사과하려고 노력했다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둘째, 금액이 상당해야 합니다. 피해가 1억 원인데 500만 원만 공탁하면 '상당한 금액'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광주지방법원 판결(2022노2694)은 "공탁금이 피해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면서도, 피고인이 자기가 얻은 이익보다 더 많이 공탁했다는 점은 참작했습니다.
성범죄에서는 더 까다롭습니다
성범죄의 경우 법원들의 태도가 엇갈립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2022노1999)은 이렇게 고민을 드러냈습니다.
"사기죄 같은 재산범죄에서는 공탁하면 양형에 유리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성범죄에서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할 때, 형사공탁을 양형에 반영해야 하는지 상당히 고민이다."
성범죄는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피해자가 "돈 필요 없다, 처벌해달라"고 할 때, 공탁금을 양형에 크게 반영하는 게 맞는지 법원도 고민하는 겁니다.
형사공탁 할 때 꼭 지켜야 할 7가지
실무에서 형사공탁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지침을 정리합니다.
빨리 하세요. 1심 판결 전에 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항소심이라면 변론 끝나기 전에 완료해야 합니다.
금액을 충분히 하세요. 피해 규모를 고려해서 상당한 금액을 공탁해야 합니다. 치료비, 일실수입, 위자료 등을 계산해보세요. 변호사와 상의하는 게 좋습니다.
공탁 이유를 명확히 쓰세요. "손해배상금", "위자료" 등 성격을 분명히 해야 나중에 민사소송에서 문제가 없습니다.
공탁서 사본을 법원에 꼭 제출하세요. 이걸 안 하면 공탁한 게 양형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공탁금을 회수하지 마세요. 돈을 다시 찾아가면 공탁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됩니다(민법 제489조). 양형 자료로 쓸 수 없게 됩니다.
피해자 반응을 확인하세요. 피해자가 공탁금 회수에 동의하면서 엄벌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효과가 매우 제한적입니다.
다른 노력도 병행하세요. 형사공탁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를 통한 사과 편지, 치료 프로그램 참여, 봉사활동 등을 함께 하면 더 좋습니다.’
형사공탁금 자주 묻는 질문
Q1. 형사공탁을 하면 합의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닙니다.
피해자와 직접 합의하는 것이 양형에 가장 큰 영향을 줍니다. 형사공탁은 그보다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다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점은 인정됩니다. 법원도 피고인의 노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피해자가 공탁금을 안 찾아가면서 "처벌해주세요"라고 탄원하는 경우, 형사공탁만으로 집행유예를 받기는 어렵습니다. 수원고등법원 판결(2022노912)이 이를 명확히 했습니다.
Q2. 형사공탁을 하면 민사소송에서도 안 물어도 되나요?
아닙니다. 공탁한다고 빚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일반적인 공탁은 돈을 맡기면 빚이 없어집니다. 하지만 형사공탁은 다릅니다. 공탁법 제5조의2가 이렇게 정해놨습니다.
피해자가 공탁금을 찾아가야 그때서야 나중에 민사소송에서 그만큼 차감됩니다. 창원지방법원 판결(2022노1779)이 이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형사공탁은 "나중에 돈 줄게요"라고 약속하고 법원에 맡겨둔 것이지, "이미 돈 줬어요"가 아닙니다.
Q3. 피해자가 공탁금을 안 찾아가면 어떻게 하나요?
일단, 그대로 두세요.
돈을 다시 찾아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공탁금을 회수하면, 법적으로 공탁을 안 한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민법 제489조).
무슨 말이냐면, 회수하는 순간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는 증거가 사라집니다. 양형 자료로 쓸 수 없게 됩니다.
피해자가 안 찾아가더라도 공탁금을 그대로 두면, "최선을 다했다"는 노력의 증거가 남습니다. 이게 양형에서 일정 부분 참작됩니다.
단, 하나 알아두세요. 일부 피해자는 "돈 필요 없다, 처벌해달라"면서 오히려 '공탁금 회수 동의서'를 제출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형사공탁의 양형 참작 효과가 매우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형사공탁 핵심 정리
형사공탁에 대해 기억해야 할 것들을 정리합니다.
형사공탁은 피해자에게 직접 보상할 수 없을 때 법원에 돈을 맡기는 제도입니다. 공탁법 제5조의2에 근거하며, 2022년 12월 9일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공탁만으로 빚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돈을 찾아가야 민사 손해배상에서 그만큼 차감됩니다. 형사공탁의 진짜 목적은 "나는 피해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양형에서 고려되지만, 합의만큼 효과가 크지는 않습니다.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을 거부하고 엄벌을 요청하면, 집행유예를 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 한 것보다는 분명히 낫습니다. 법원도 피고인의 최선의 노력을 인정합니다.
절차는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재판 중인 법원 공탁소에 공탁서를 제출하고, 돈을 입금하고, 공탁서 사본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세요.
형사공탁은 합의를 대체하는 완벽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하지만 합의가 안 되는 상황에서 피고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입니다. 진심 어린 반성과 함께할 때, 그 의미가 더 커집니다.
본 내용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사건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달리 판단될 수 있습니다.
정확한 법률 자문은 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사와의 상담을 통해 받으시기 바랍니다.